“죽음을 잊지마라(memento mori)”는 경구가 주는 의미처럼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회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다를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꾼 예지몽들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감정들이 드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융 학파의 폰 프란츠 박사의 저서 「꿈과 죽음」에서 인용한 꿈들을 살펴보자.
<꿈1> 죽음에 임박한 노년의 한 여성이 꾼 꿈이다. ‘그녀는 병실 안쪽 창턱 위에 촛불이 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가 그 촛불이 꺼져 있음을 갑자기 깨닫는다. 다가오는 커다란 어둠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그녀를 엄습한다. 그러나 갑자기 그 같은 촛불이 다시 빛을 낸다. - 창문의 다른 쪽에서. 그리고 그녀는 깨었다.’ 이 예지적인 꿈에서 그녀가 느낀 감정은 공포와 불안이다. 그녀는 꿈을 꾼 날 평온한 가운데 죽었다. 여기서 ‘창문 다른 쪽에서 빛’은 현세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이행을 상징한다.
<꿈2> 노년의 한 간호사는 ‘꿈에 그녀가 약혼 통고를 받았는데 누구와 약혼했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에 완전히 동의했다. 그런데 깨어나서는 그 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고, 또 꿈을 꾸었다. ’그녀는 흰 수의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붉은 장미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신랑에게 다가갔고, 마음은 기쁨과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느낀 감정은 기쁨과 동경이다. 깨어나서 그녀는 신랑이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이었으며, 이 꿈이 다가 올 죽음을 준비하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꿈속의 감정은 공포가 아닌 기쁨과 동경이었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 꿈에 약혼이나 결혼을 하는 행위는 내세와의 언약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에게 언약을 하는 인물은 신이나 이미 돌아가신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음은 고혜경 교수가 불교방송에 출연하여 소개한 꿈들이다. 꿈 꾼이는 50대 후반 여성으로 말기암 환자다. 그녀는 죽기 전에 다음 두 개의 꿈을 꾸었다.
<꿈3> 어느날 꿈에 ‘어마어마한 바윗돌들이 보랏빛 형광색을 띄었는데, 마치 산사태가 난 것처럼 우르르 꽝꽝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데, 세상이 끝장이 날 것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꿈속의 감정은 죽음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다. 보랏빛 색은 무엇을 상징할까? 보랏빛은 단일색이지만 따뜻함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혼합색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융 학파에서 보라색은 양극(兩極)의 합일(合一)이나 혼합을 의미한다고 본다. 즉, 이 꿈에서 보랏빛은 육체적인 삶과 죽음의 양극단이 합쳐지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꿈4> 앞의 꿈을 꾸었던 환자가 죽기 전날 꾸는 꿈이다. ‘바위돌들이 평평한 계단이 되었고, 그 너머에는 빛이 비치고 있었어요.’ 그 다음날 새벽에 임종하였다. 이 꿈에서 그녀의 감정은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평화로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계단을 걸어 그 너머 빛이 비추는 내세의 삶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 환자는 신의 현존을 믿었던 신자였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나 태도에 따라서 꿈 속의 감정이나 꿈의 내용도 다르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현세와 영원한 이별을 나타내는 꿈에서 상징은 ‘떠나다’ 혹은 ‘간다’ 등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죽음을 전달하는 전령은 먼저 돌아가신 분들, 성서, 종교 경전에 나오는 분들이 된다. 삶은 종종 식물인 나무, 풀, 곡식, 꽃 등으로 상징되는데, 죽음을 예지하는 경우에는 이들 식물이 시들거나 쓰러지거나 뿌리채 뽑이는 현상 등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어느 환자분은 꿈에 ‘의사가 완치되었으니 나가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몸이 좋아진 것 같아서 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그 침대에 자신의 육신이 있는 모습을 본다.’ 육신은 두고 영혼이 떠난다는 뜻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Jung)이 꾼 죽음에 관한 두 개의 꿈을 비교해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꾼 꿈이다. ‘칠흑같은 어두운 숲에 거대한 셰퍼트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도깨비 우두머리가 어떤 인간을 물어오라고 개에게 명령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꿈속에서 놀란 그는 무릎에 힘이 빠진다. 어머니에 대한 강한 사랑과 애착이 이 예지몽을 만들어냈는데, 그가 꿈에서 느낀 감정은 놀람과 두려움이었다.
그가 죽기 두 달전 꿈에서 드러난 감정과는 대비된다. 꿈에서 ‘그에게 황금으로 만든 성탑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쥐어졌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렸는데, 탑이 완성되어 그가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자신의 죽음을 예지한 꿈에서는 마음의 평화가 드러나고 있다.
사람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죽음에 대한 믿음의 정도에 따라 죽는 사람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 국경복, 경제학 박사. 저서: '꿈, 심리의 비밀'(2019년), 이야기 꿈의 해석(블로그), 꿈사랑 심리상담연구소(홈페이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