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전기업 "한수원 기술·권리 없어…체코 반독점당국에 진정"
한수원 "원전 기술 원만히 해결 노력중…대통령 내달 체코 방문"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팀코리아'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 수주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설계는 웨스팅하우스의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체코에 이전할 권리가 없단 주장이다. 24조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 발목 잡히자 한수원은 물론 정부까지 해결을 위해 나섰다.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가 한국수력원자력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체코반독점사무소에 진정을 냈다고 밝혔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자사의 AP1000 원자로를 내세워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했지만 탈락했다. 체코 정부는 지난달 17일 한수원, 대우건설, 두산에너빌티티 등으로 구성된 팀코리아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수원 원자로, 웨스팅하우스 기술력…이전 권리 없어"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입찰에 참가한 사업자는 CEZ와 현지 공급업체에 제공하려는 원전 기술을 체코 측에 이전하고 2차 라이선스(특허 허가권)를 제공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수원에겐 자사의 허락 없이 기술을 제 3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가 없단 것이다.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한수원의 '한국형 원전'인 APR1000과 APR1400 원자로 설계다. 웨스팅하우스는 해당 설계에 본사가 특허권을 보유한 2세대 '시스템80' 기술이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이 원자로의 원천 기술을 온건히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어 자사에게만 기술을 수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 원자로 대신 APR1000 원자로를 도입하면 미국 기술을 불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코와 미국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천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한국에 수출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 일자리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일자리 1만5000개가 포함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웨스팅하우스는 국제 중재 및 미국 내 소송을 통해 자사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중재 결정은 2025년 하반기 전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도 예상했다.
현재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체코 등에 수출하려는 원전 기술이 자사 기술이라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하며 2022년 10월 미국에서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한국에서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 중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한수원·대통령실 "美와 소통해 원만한 해결…마무리 단계"
이번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문제 제기를 두고 각계에서는 한수원을 압박해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수원이 내년 3월까지 체코 원전 수주 최종 계약을 맺으려면 미국 정부에 체코 원전 수출을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웨스팅하우스과의 분쟁을 먼저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 에너지부는 원전 수출 신고의 주최는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수원의 수출 신고를 반려한 바 있다.
이에 한수원은 황주호 사장이 이달 초 미국에서 웨스팅하우스 경영진과 직접 만나 지재권 분쟁 상황에 대해 논의하는 등 대화로 풀어가겠단 방침이다.
대통령실 또한 지난 24일 "분쟁의 원만한 해소를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정부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에서는 체코 원전 수출에 차질이 없도록 굳건한 한미 동맹 기조하에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양국이 원전을 포함해 재생·수소 등 에너지 전반에 관해 협력의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또한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은)현재 마지막 조율 단계로, 정부 간의 여러 협의가 원만하게 잘 진행돼 오고 있다"고 말했다.
◆尹 경제사절단 9월 방문…체코 원전 수주·협력 확대 추진
한편 내달 체코를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경제사절단은 삼성·SK·LG·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 그룹의 총수는 물론 체코 원전 관련 기업 관계자들도 대거 포함된다. 이들은 양국의 원전 협력은 물론, 금융·산업·에너지·과학기술·교통 인프라·교육 등 전 분야에 걸친 호혜적 협력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한국-체코간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협정이 체결될 지 여부도 주목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는 TIPF 등 구체적인 협력 계획을 지난달 체코에게 제시했으며, 조만간 체코와 만나 이를 구체화한단 방침을 세웠다.